피아니스트 한수진(음악춘추 2014년 2월호)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로 활동
빙상에서 6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스틱으로 퍽을 쳐서 상대팀의 골에 넣는 스포츠, 바로 아이스하키이다. 거대한 보호 장비를 입고 빙상을 가로 지르며, 치열한 몸싸움도 벌이는 거친 운동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며, 국가대표 팀에서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학생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2월에 연세대 음대의 졸업을 앞두고 있는 한수진이다.
독특한 그녀의 이력에 흥미를 느낀 기자는 약속 장소인 서울의 한 호텔 로비에서 한수진을 만나 보았다. 말로만 듣던 ‘태극 마크’와 후원사의 로고가 있는 단체복을 입은 그녀는 오는 4월 이탈리아에서 개최될 예정인 세계선수권대회를 위해 호텔과 태릉 선수촌을 오가며 합숙 훈련을 받고 있었다.
▶피아노와 아이스하키는 언제, 어떻게 시작했나요?
한수진_ 피아노는 5살 때부터 배웠고, 아이스하키는 초등학교 때 미국에서 전학 온 친구를 통해서 처음 접해 클럽팀에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아이스하키를 1년 정도 하다가 예원학교 입시를 앞두고 있던 6학년 때부터 아이스하키를 쉬기 시작해 계속 잊고 지냈어요. 그러다가 연세대 음대에 진학한 후 학교의 아이스하키 동아리인 ‘타이탄스’에 들어가면서 다시 아이스 하키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아이스하키를 계속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한수진_ 아무래도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웠기 때문에 부모님께서는 제가 계속 피아노를 하길 원하셨어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피아노 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웃음). 피아노는 몇 시간씩 앉아서 연습해야 하지만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아이스하키가 더 잘 맞았거든요. 그리고 어려서부터 아이스하키만이 아니라 운동을 좋아했고요. 피아노를 한다면 어떻게든 했을 수도 있겠지만, 아이스하키는 제가 즐기면서 하기 때문에 실력도 빨리 향상된 것 같아요.
▶대학시절 피아노와 아이스하키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요.
한수진_ 1, 2, 3학년 때는 평일에 매일 같이 학교에 갔다가 저녁에는 태릉에서 훈련을 했지만 힘든 줄 몰랐어요. 3년 동안 계속 그런 생활을 했는데 어머니께서 휴학을 권하셔서 휴학을 한 계속 아이스하키만 했는데, 휴학 신청이 가능한 6학기를 모두 다 채웠더라고요. 그래서 2013년 가을에 복학해 졸업 연주도 했습니다.
▶휴학한 3년 동안 아이스하키만 했으면 복학해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겠네요.
한수진_ 사실 휴학하기 전, 마지막 실기 시험을 끝낸 후 휴학 기간 동안 피아노를 친 적이 없어요. 휴학 후 2년간은 피아노를 잊고 살았는데, 3년째가 되니 졸업 연주가 걱정되었지만 그러면서도 연습은 안 하게 되더라고요(웃음). 그러다 9월 복학을 앞두고 여름에 수강 신청을 한 후에서야 피아노 연습을 다시 시작했어요.
▶졸업 후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한수진_ 2월에 대학을 졸업하면 일단 4월 세계선수권대회 준비에 매진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이스하키 선수 생활과 병행해 지도자의 길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아이스하키로 진로를 정했군요. 5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으면 거의 20년 정도 한 셈인데, 미련이나 아쉬움은 없어요?
한수진_ 네(웃음). 오히려 피아노를 해서 시간 낭비를 한 것이 아니냐고 묻는 분들도 있는데, 피아노를 공부한 시간들이 특별히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아니에요. 어렸을 때 콩쿠르에 출전해서 떨리고 긴장했던 기억이 나는데,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었고요.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아이스 하키 세계선수권대회도 떨리긴 마찬가지 아닌가요?
한수진_ 아이스하키는 저 혼자가 아니라 팀원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덜해요. 운동으로 따지면 피아노는 개인 종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이스하키는 그 긴장감을 혼자 이겨내는 것이 아니고, 팀원들이 있어 한결 낫더라고요.
▶피아노 대신 아이스하키를 택하게 만든 아이스 하키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한수진_ 예를 들어 쇼트트랙은 스케이트만 타고, 양궁은 상체만 사용하지만 아이스하키는 전신 운동이고, 전술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스피드가 있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라서 좋아요. 사실 아이스하키를 하며 부상도 많이 당했고, 깁스를 할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그만두라고 하셨지만 제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 어쩔 수 없더라고요.
▶국내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팀은 국가대표팀이 유일하지요.
한수진_ 국내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팀이 하나밖에 없다 보니 선수층이 너무 얇아서 힘든 건 사실이에요. 예전에는 선수의 반 이상이 직장 생활을 하며 아이스하키를 했는데 지금은 거의 다 학생이라 학업과 선수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 정원이 21명인데, 가장 어린 선수는 올해 중 1이고, 가장 나이 많은 선수는 84년생이에요. 중·고등학생에게는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 월급이 용돈치고는 많은 편이지만 대학생, 일반인들이 월급만으로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요. 하지만 더 많이 지원 받고, 선수들도 더 노력하면 앞으로는 올림픽 진출도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전공하고 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한수진_ 요즘은 예전 같지 않아서 부모님이 억지로 시킨다고 해서 학생들이 하진 않는 것 같아요. 어떤 진로를 선택하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_배주영 기자/ 사진_김문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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