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가 뭐가 좋아?
5월 무렵이었는데도 아주 더운 날이었습니다.(벌써 9년 전이군요. --;) 모내기 마무리를 위해 근처 농촌 마을에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소대에서 3명씩, 중대에서 10명 남짓한 병사들이 차출되었고, 전 그 중의 한명이었습니다. 땡볕에서 일해야 한다는 고단함 쯤이야, 일하면서 먹는 시원한 새참(콩국수? 냉면?)과 일 끝나고 먹는 저녁(삼겹살+된장찌개+나물반찬+웰빙상추 등 야채?)에 대한 기대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죠.
그러나 저를 데려갈 농민분을 기다리면서 마을회관 평상에 앉아 하릴없이 포도맛 폴라포의 얼음알갱이를 깨먹는 동안에도, 제일 처음 오셔서 저를 데려가던 인상 좋은 할아버지를 뵐 때만 해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담배 일발 장전’할 여유도 없이 드넓은 논두렁을 휘젓게 될 것임을. 오후 2시에서야 먹는 점심 겸 새참은 할아버지가 들고 온 쟁반 위에 놓여있는 뜨끈뜨끈한 막걸리와 쵸코파이라는 해괴한 조합이 전부이리라는 것을 말이죠. 농활에서의 근사한 새참이니 저녁이니 하는 것들 역시 엄연히 복불복이었던 것입니다... ㅠㅠ
‘이거라도 안 먹으면 난 죽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에 전 그 ‘따뜻한 점심’을 꾸역꾸역 먹었고, 결국 심하게 체하고 말았습니다. 이전에도 막걸리를 먹고 나면 두통에 시달렸던 저는 그 사건 이후로 막걸리에 입을 대지 않고 살았었더랬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회식자리리나 모임에서 막걸리를 찾는 사람이 부쩍 늘어나더니, 급기야 작년엔 삼성경제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막걸리가 올해 히트 상품 1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국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막걸리가 인기를 얻자 아시아나항공은 작년 10월부터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전 노선에서 막걸리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하구요.
이런 상황에서 어찌 ‘대세’를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남들 다 마시는데 혼자 맥주 홀짝거리는 것도 한 두 번이죠. 저 역시 근 10여년에 걸친 막걸리 금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야 말았습니다. 홍어회, 보쌈, 파전, 홍합탕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게 된 거죠. 그런데... 맛있더군요. ^^; 맛있어서 꽤 많이 마셨는데도 예전에 비해 숙취도 덜했구요. 그동안 막걸리에 무슨 일이 있던 걸까요?
막걸리에 무슨 일이?
우선 막걸리에 대해 살짝 소개해보자면, 다들 아시다시피 막걸리는 우리 조상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민족 고유의 전통주입니다. 막걸리란 말은 조잡하게 거른 술을 뜻하는데요. 막걸리의 ‘막’은 ‘마구’ 또는 ‘함부로’ 또는 ‘조잡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고, ‘걸이’는 거른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막걸리는 다양한 명칭으로 사용되어왔습니다. 그 빛깔이 맑지 못하고 탁하다고 하여 ‘탁주’ 또는 ‘탁배기’라고도 하고, 비슷한 뜻으로 ‘재주(滓酒)’ 또는 ‘회주(灰酒)’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막걸리는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라고 하여 ‘국주(國酒)’라고도 불렸고 집집마다 담근다고 하여 ‘가주(家酒)’, 농가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술이라고 하여 ‘농주’라고도 불리웠습니다. 막걸리가 다른 술에 비해 열량과 단백질의 양이 풍부해 고된 일을 마친 뒤의 갈증을 씻어주고 배고픔을 달래주는 훌륭한 기호품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김홍도의 '주막'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막걸리는 국민술이었습니다. 전체 주류시장의 6~70%가 막걸리였고, 그 시절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막걸리 제조업자들은 조기 숙성을 시키기 위해 카바이드 같은 화학물질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막걸리를 마시면 머리가 아프다는 등의 부작용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무렵 소주나 맥주가 인기술로 급부상하면서 막걸리의 암흑시대가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거죠.
그랬던 막걸리가 이제야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경기침체로 값싼 술을 찾는 경향이 뚜렷해진 상황에서 이전에 비해 세련된 이미지로 변신한 막걸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생막걸리의 뛰어난 이뇨작용 덕분에 웰빙주의 반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구요.
19도대 소주가 등장하면서 시작된 저도주 붐 역시 막걸리 인기에 한몫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시중에 판매되는 대다수 막걸리의 도수는 6~7도 가량으로 맥주보다 조금 독한 수준인데요, 막걸리 도수가 10도 이상이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인기를 얻지 못했으리라는 겁니다.
(※사진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막걸리는 진.짜.로. 건강식품일까?
그런데 막걸리가 진짜로 건강식품일까요? 전문가들은 "과
하지 않게만 마신다면 어떤 술보다 건강에 이로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막걸리를 마시는 것은 알코올 성분만 제외하면 영양제를 먹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막걸리의 구성성분은 물이 80%고, 나머지 10%는 알코올 6~7%, 단백질 2%, 탄수화물 0.8%, 지방 0.1%이며
나머지 10%는 식이섬유, 비타민B,C와 유산균, 효모 등이 혼합된 물질로 영양의 보고라는 겁니다. 와인이 알코올·물(95~99%)을 제외하면 약 1~5%만이 몸에 좋은 무기질인 것에 비해 막걸리를 구성하고 있는 영양성분이 양적으로도 훨씬 우위인 거죠.
또한 막걸리 1mL에 든 유산균은 106~108개인데요. 일반 막걸리 페트병이 700~800mL인 것을 고려하면 막걸리 한 병에는 700억~800억 개의 유산균이 들어 있는 셈입니다. 일반 요구르트 65mL(1mL당 약 107마리 유산균 함유)짜리 100~120병 정도와 맞먹는 거죠. 유산균은 장에서 염증이나 암을 일으키는 유해 세균을 파괴하고 면역력을 강화하는 기능을 담당합니다. 뿐만 아니라 단백질과 섬유질이 풍부하기 때문에 항암효과가 있고 고혈압 예방에도 좋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습니다.
(※사진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특히 미용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어 젊은 여성들의 소비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실제로 이 점에 착안해 막걸리를 피부 마사지에 응용하는 한의원도 등장했는데요. 서울 압구정동의 한 한의원에서는 주요 고객들을 대상으로 '이화주 마사지' 패키지를 실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막걸리 열풍이 정말 대단하긴 한데요. 한편으론 막걸리 열풍에 대해 걱정하는 시선도 없지는 않습니다. “머잖아 막걸리는 대중에게 무덤덤하게 기억될지도 모른다. 막걸리 열풍은 대중문화의 한 속성으로서 일시적인 쏠림 현상으로 끝날 수도 있다. 우리가 오늘 막걸리에 푹 빠진 것은 그것의 사용가치보다는 상징적인 기호 가치 때문일 것이다. 경제적인 어려움, 희망을 주지 못하는 정치, 밀실 사회의 소통 부재, 지식정보사회의 비인간화 등에 대한 문화적 대응의 한 단면이 아닐까. 막걸리에 환호하는 소리가 소외되어 가는 서민 대중의 절규로 들리기도 하는 까닭을 곰곰이 되새겨 본다”라는 어느 칼럼니스트의 속깊은 우려는 간과해선 안될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듯합니다.
아무쪼록 단순한 쏠림현상에 그치지 않고 매력을 십분 발휘하여 그야말로 막걸리가 세계인이 사랑하는 술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그나저나 글을 쓰다보니 아침부터 날씨가 꾸물꾸물한 게... 막걸리가 무척 땡기는군요. ^^;
(※사진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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