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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폴란드 수교 30주년 기념 음악회 SIMF 펜데레츠키 누가 수난곡 ‘사람의 길을 묻다’ - 2 / 2019년 10월 26일(토)

언제나 푸른바다~ 2019. 12. 24. 15:03

한국, 폴란드 수교 30주년 기념 음악회 

SIMF 펜데레츠키 누가 수난곡 ‘사람의 길을 묻다’ 

일시 : 2019년 10월 26일(토) 오후 5시 

장소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연주자 : 지휘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소프라노 이보나 호싸, 테너 토마스 바우어, 베이스 토마시 코니에츠니 내레이터 슬라보미르 홀랜드 인천시립합창단, 부천시립합창단, 고양시립합창단, 과천시 소년소녀합창단, KBS교향악단 



주최 : 서울국제음악제, (재)KBS교향악단 

주관 : (주)오푸스 

후원, 협찬 : 서울특별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IAM 


사람의 길을 묻다 – 펜데레츠키의 <누가 수난곡>

누구도 스스로 원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으며, 어떤 목적을 갖고 태어난 사람도 없다. 어느 날 주어진 생명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 대도시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비현실적인 철학적 질문으로 들린다. 하지만 전쟁의 참화 속에 놓이고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광경을 목도한 사람들에게는 삶이라고 하는, 가장 숭고한 가치를 지키는 현실적인 질문이다.

폴란드의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는 유년 시절에 겪은 이러한 기억을 지금도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이러한 고뇌를 성가를 통해 풀어냈으며, 오늘날까지 그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성가를 작곡하고 있다. 그 정점에 바로 한국 초연되는 <누가 수난곡>이 있다. <누가 수난곡>은 신약성서의 누가복음 22~23장에 기록된 예수의 고난을 노래하는 작품으로, 시편과 라틴어 기도문도 가사로 사용되었다.

이 곡이 1966년 3월에 초연되었을 때, 세상은 이 곡이 음악사에 길이 남을 작품임을 알아보았다. 바로 그 해에 ‘노르트하임-베스트팔렌 대상’을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이탈리아 상’을 수상했다. 이후 펜데레츠키의 음악양식이 많이 변화했음에도, 이 곡은 모차르트의 오페라로 유명한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지난 2018년 개막작으로 연주되는 등,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감회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렇다면 펜데레츠키는 <누가 수난곡>을 통해 우리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가? 이 작품은 성서에 기록된 예수의 고난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오늘날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를 가사로 적은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예수의 고난에 놓인 음악적 외침을 통해, 우리시대가 겪었던, 그리고 지구 어딘가에서 현재 겪고 있을 비극을 알리는 것이 그의 진정한 마음이다. 그리고 마지막 시편 31편을 통해 슬픔이 아닌 구원을 갈구하며 인류의 평화와 공존을 꿈꾼다.

펜데레츠키의 대표적인 작곡기법 중 하나인 클러스터(음 덩어리)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극도의 강렬한 표현을 들려주며 장중한 화음과 환상적인 이미지는 누가 수난곡에 표현력을 더한다.

한국-폴란드 수교 3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국제음악제에서 선보이는 세기의 걸작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이중협주곡과 <누가 수난곡>한국초연은, 작곡가인 펜데레츠키가 직접 내한하여 지휘대에 선다는 점에서 매우 뜻 깊은 순간이 될 것이며 이 작품에 정통한 솔리스트들과 펜데레츠키 교향곡 5번을 세계 초연한 KBS교향악단, 그리고 정상급의 합창단들이 놀라운 수준의 연주를 들려줄 것이다.


[프로그램] 

펜데레츠키누가 수난곡(한국 초연)

K. Penderecki : St. Luke Passion (Korean Premiere)


성 누가 수난곡(Passio Et Mors Domini Nostri Jesu Christi SecundumLucam)

2018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개막작은 조금 특별했다. 보통 고전 오페라나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시작되던 이 해의 개막작은 펜데레츠키의 1966년 쓰여진 작품이었다. 몬트리얼 심포니와 켄트 나가노가 지휘한 이 작품은 5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전율적이었고 세상은 아팠던 20세기초중반을 다시금 다시 21세기에 끄집어 낸 시대를 초월한 작품에 열광하였다.

크쉬스토프 펜데레츠키(Krzysztof Penderecki)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지휘자로서 현재까지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특히 광복을 기념하여 1991년 문화부 이어령 장관의 아이디어로 위촉된 교향곡 5번은 1992년 8월 14일 작곡가 자신의 지휘와 KBS 교향악단의 연주로 초연되었으며 부제로 ‘한국’이라 붙여졌다.이후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중국국립교향악단,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파리 국립관현악단 등 기라성 같은 교향악단에서 연주되었으며 낙소스, 워너 클래식, 데카 등 세계적인 음반회사에서 발매되었다.

이렇게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갖게 된 펜데레츠키의 가장 빛나는 걸작 중 하나이자 이정표적인 대작이라고 불리는 작품이 성 누가 수난곡(St. Luke Passion, 정식제목 Passio Et Mors Domini Nostri Jesu Christi SecundumLucam)이다. 펜데레츠키의 음악이 보여주는 강력하면서도 장대한 표현력에 당시의 청중들과 평론가들은 경악과 함께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20세기 음악의 새로운 조류를 탄생시킨 걸작이라고 인정받았다.

전체 2부로 구성되었으며 연주 시 총 두시간이 필요하며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3개의 합창단,소년 합창단,소프라노,바리톤,베이스와 나레이터가 포함된 대작으로 1966년 3월 30일 독일 뮌스터 성당에서 초연되었다.

펜데레츠키는 그의 유년시절에서 순수하고 아름다운 행복의 시기는 단 몇 년에 불과했다.  사춘기는 이미 전쟁과 독일의 테러로 얼룩진 시기였다. 브루노 슐츠의 산문에서 묘사된 내용을 상상하면 될 정도로, 펜데레츠키의 고향인 폴란드 남부 도시 뎅비카에서 그는 전쟁과 독일 테러를 모두 겪었다.  “저는 유대인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고향 뎅비카에는 성당은 하나뿐이었고 유대교 회당은 다섯 개나 되었죠. 유대교 회당에서 들려오던 성가소리를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 성가는 어느 날 갑자기 멈춰버렸고, 그의 유년의 세계는 돌연 눈과 귀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그 때문에 그 시절이 그에게 보다 더 생생한 기억으로 새겨졌다. 그리고 또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목격하고 전쟁 후 이념의 대결 현장은 조숙한 아이에게는 악몽으로 다가왔다. 그의 어린 시절의 집에서는 창문 너머로 국내군 ‘도적들’이 ‘폴란드 인민공화국’ 대표들에 의해 시내 중심광장에서 교수형 당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광경, 그 마지막 순간의 고통은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펜데레츠키는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도 이같이 기억한다. 누가 수난곡 역시 단순히 성서에 근거해 쓰여진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에 각인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그의 외삼촌 한 명은 카틴에서 소비에트에 의해, 또 한 명은 나치에 의해 파비악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 후, 그 기억에는 소위 ‘해방’의 비통한 순간들이 덧씌워진다. 외세에 의한 강요된 현실과 또 다른 형태의 테러가 수년간 지속되었으며 공허와 위선의 시기가 이어져, 젊은이들의 잠재 의식 속에 압제에 대한 반감을 일으켰다. 즉, 그들의 정신에 독립에 대한 절대적 염원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이렇듯 성 누가 수난곡은 종교음악을 뛰어 넘은 펜데레츠키의 사상적 결집체다.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직접 눈앞에서 본 전쟁과 사람의 추악함, 조국 폴란드가 약소국으로 격어야 했던 운명은 펜데레츠키 평생동안 그의 사상을 지배하였다. 펜데레츠키는 성 누가 수난곡을 통해 사람의 길을 제시하려 했고 구세주의 핍박을 기록한 수난곡을 텍스트로 채택했다.

펜데레츠키는 이 작품이 단순히 종교음악적으로 취급되기를 원치 않았다. 그가 원한 것은 이 작품을 통해 폴란드의 사람들에게, 넓게는 압제받고 있는 인류에게 던지는 메시지였다. 성 누가 수난곡을 시작으로 그의 히로시마의 생존자를 위한 애가, 오페라 ‘실락원(밀튼)’, 루돈의 악마들(존 파이팅)’, 그리고 ‘폴리쉬 레퀴엠’에서 면면하게 흐르고 있는 사상의 원류가 바로 ‘사람의 길’이었다.

폴란드 자유화 운동의 시작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펜데레츠키의 토대는, 한 작곡가이자 행동하는 예술인이었던 그의 사상의 시작은 ‘사람의 길’에서 시작되었고 그 길에서 끝날 것이다


사진_ 김문기<김문기의 포토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