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진건읍 사릉(용정리)의 여름하늘의 노을 1
1.
어려서 부터
나는 늘
해질 녁이 좋았다
분꽃과 달맞이 꽃이
오므렸던 꿈들을
바람 속에 펄쳐 내는
쓸쓸하고도 황홀한 저녁
나의 꿈도
바람에 흔들리며
꽃 피기를 기다렸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눈물이 핑 도는
이별의 슬픔을
아이는 처음으로 배웠다.
2.
헤어질 때면
"잘있어, 응" 하던 그대의 말을
오늘은 둥근 해가 떠나며
내게 전하네
새들도 쉬러 가고
사람들은 일 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겸허한 시간
욕심을 버리고 지는 해를 바라보면
문득 아름다운 오늘의 삶
눈물 나도록 힘든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견디고 싶은 마음이
고마움이 앞서네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래야 내일의 밝은 해를 밝게 볼 수 있다고
지는 해는 넌즈 시 일러주며 작별인사를 하네
3.
비바람을 견뎌내고
튼튼히 선 한그루 나무처럼
오늘이란 땅 위에 선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슬픔을 견뎌내야
조금씩 철이 드나 보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겸허하고
터무니 없는 오해도 받고
자신의 모습에 실망도 하면서
어둠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가엽지 않은 웃음을 웃을 수 있고
다른 이를 이해하는 일도
좀더 깊이 있게 할 수 있나 보다
4.
찬물로 세수하고
수도원 안 정원의 사철나무와 함께
파랗게 피어나는 겨울 아침
흰 눈 속의 동백꽃은
자주 찾는 동박 새 처럼
호랑가시나무 열매를
즐겨 먹는다는 붉은 새처럼
나도 이제는
붉은 꽃, 붉은 열매에
피 흘리는 사람에 사로잡힌
한 마리 가슴 붉은 새인지도 몰라
겨울에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기쁨
시들지 않는 노래로
훨훨 날아 다니는 겨울새 인지도 몰라
5.
귀에는 아프나
새길수록 진실인 말
가시 돋 혀 있어도
향기를 숨긴
어느 아픈 말들이
문득 고운 열매로
나를 먹여주는 양식이 됨을
고맙게 깨닫는 긴긴 겨울 밤
좋은 말도 아껴쓰는 지혜를
칭찬을 두려워 하는 지혜를
신께 청하며 촛불을 켜는 겨울 밤
아침의 눈부신 말을 준비하는
벅찬 기쁨으로 나는
자면서도 깨어 있네
6.
흰 눈 내리는 날
밤새 깨어 있던
겨울나무 한 그루
창을 열고 들어와
내게 말하네
맑게 살려면
가끔은 울어야 하지만
외롭다는 말은
함부로 내 밷지 말라고
사랑하는 일에도
자주 마음이 닫히고
꽁해지는 나에게
나보다 나이 많은 나무가
또 말 하네
하늘을 보려면 마음을 넓혀야지
별을 보려면 희망도 높혀 야지
이름없는 슬픔의 병으로
퉁퉁 부어 있는 나에게
어느새 연인이 된 나무는
자기도 춥고 아프면서
나를 위로 하네
흰 눈 속에
내 죄를 묻고
모든 것을 용서해 주겠다고
나와 나무는 또 말하네
참을성이 너무 많아
나를 주늑 들게 하는
겨울나무 한그루
-이 해인-
사진_김문기(김문기의 포토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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