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춘추 기획대담 | 인물탐구 12월호
작곡가 장정익 선생
한국 현대음악의 지평을 넓힌
전남 여수 출신의 작곡가 장정익 선생은(1946. 2. 22∼2012. 12. 18, 향년 66세) 고향인 여수에서 고등학교까지 수학한 후, 서울대 음대(1975)와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1985)를 졸업하였다. 대구가톨릭대학교(구 효성여대) 작곡과 및 건국대 음악교육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이후 1989년부터는 서울대 음대 작곡과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또한 팬 뮤직 페스티벌 음악 감독, 미래악회 회장 및 한국 작곡가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국내 현대음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세 대의 트롬본과 관현악을 위한 만파정식지곡(萬波停息之曲)」, 「트롬본과 테입을 위한 ‘관순’」, 「클라리넷, 피아노를 위한 ‘갑사(甲寺)’」, 「클라리넷, 플루트, 피아노를 위한 ‘명(鳴)’」을 비롯한 명 시리즈, 「금관 7중주를 위한‘풍장(風葬)’」,「오보에와 타악기를 위한 ‘Karma(業)’」 등이 있으며, 국악 실내악 「남도소리」, 「국악 관현악을 위한 ‘허당(虛堂)’」을 비롯한 관현악, 실내악, 전자음악, 전통 악기를 위한 음악, 성악과 창 등을 통해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그 밖에 작품집 및 저서로는 『장정익 작품집』,『화성, 구조와 기능』, 『리듬, 구조와 기능』 등이 있다.
일시: 2013년 11월 5일(화) 오전 10시 30분
장소: (주)코스모스악기 10층
진행: 이용일(한국음악교육협회 명예회장)
패널: 조윤호(뉴시니어라이프 상임고문, 시인)
이순교(작곡가)
김규동(서울대 음대 교수)
정태봉(서울대 음대 교수, 미래악회 회장)
김태희(작곡가)
장정익 선생의 성장 과정 및 음악의 출발
이용일_ 이번 12월 호 음악춘추 인물탐구난에서는 우리나라 현대음악계 발전을 위해 힘쓰신 작곡가 장정익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이렇게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오늘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은 생전의 장 선생님과 각별한 사이셨다고 익히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선생님의 뜻이 우리 음악사에 잘 기록되어 후학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여러 좋은 말씀을 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장정익 선생님 음악의 출발점을 여수고등학교에서 밴드부 단원으로 활동하면서였다고 기억하는데요. 더욱 자세한 이야기는 친구로서 오랜 시간 교분을 나눈 조윤호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지요.
조윤호_ 장정익 선생은 저보다 한 학년 위였지만, 1년을 쉬게 되면서 중학교 때는 같은 학년으로 지냈습니다. 한 동네에서 함께 성장한 막역한 친구 사이지요.
선생과 본격적으로 친해진 것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였는데, 한 번은 「윌리엄 텔 서곡」 음반을 함께 들으려니 판을 틀 수 있는 턴테이블이 없었고, 이를 간신히 빌려 음악을 감상하며 희열을 느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음악을 하기에 얼마나 열악한 환경이었나 하면, 제가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에 처음 밴드부가 창설되어 클라리넷을 불게 되었는데, 스케일을 아는 사람이 없어 독학으로 익혀야 한 것은 물론, 예산이 부족해 리드를 살 수가 없어서 대나무를 깎아 물에 불려 사용해보기도 하였지요.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서도 저희들이 전남지역에서 시골학교 밴드부 치곤 꽤 유명세를 타 연주도 여러 회 가지게 되었는데, 이는 음악에 재능이 있고 관심이 많은 학생들 몇몇이 존재했었기에 가능하였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장정익 선생이었습니다.
또한 그 때 저희의 곁에서 음악을 알려주신 이광범, 이용일 선생님의 영향으로 작곡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는데요. 이 때 장 선생은 나아가 화성학, 대위법 등을 공부하면서 전공으로 삼아 서울대 음대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용일_ 장정익 선생님의 부친께서는 어떤 직업을 가지고 계셨나요? 또 형제관계는 어떠셨는지요?
조윤호_ 장 선생의 부친께서는 개인사업을 하셨어요. 그래서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고, 선생은 6형제 중 넷째였습니다.
이용일_ 그렇다면 음악적인 환경이 조성된 가정 환경에서 성장하셨나요?
조윤호_ 가족 중 음악에 조예가 깊은 분은 안 계셨지만, 장정익 선생은 가톨릭을 종교로 삼았기 때문에 아마도 음악적인 영향을 그러한 부분에서 받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어렸을 때의 장 선생은 조용하면서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하고, 타협을 쉽게 하는 타입이 아니었습니다. 더불어 일생을 친한 친구로 교류하면서 느낀 바로는 음악가로서의 화려한 재질을 보였다기보다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고집스러움으로 작곡가의 길을 걷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장정익 선생과의 첫 만남
이용일_ 저는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장정익 선생님과 처음 만났고, 그 때를 회상하자면 밴드부에서 무작정 악기를 불던 순수한 시골소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웃음).
저는 이미 군악대를 거쳐 교수가 되었던 때였으니 브라스 밴드에 대한 기본상식은 알고 있었기에 장 선생님에게 잔소리도 하고 작곡에 대해서 조언도 했었습니다.
또한 장 선생님을 가장 질문이 많았던 사람으로 기억하는 반면 “어떻게 어린 친구가 꼭 할 말만 하고 농담 한 번 건넬 줄을 모르지?”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고집스러운 면이 있었기 때문에 장 선생님의 제자 분들이 한편으로는 어려운 점도 많으셨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이러한 장 선생님과 어떻게 첫 만남을 이루었는지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태봉_ 저는 대학시절, 장정익 선생님이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하시면서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를 포한한 많은 학생들에게 세련되고 멋있는 분이라는 인상을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뵈었을 당시가 봄이었는데, 캠퍼스에 선글라스를 멋들어지게 쓰고 나타나 많은 학생들의 시선을 끌었지요. 특히 여학생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던 것 같고, 남학생들에게도 멋쟁이 선배로 부각되었습니다. 한 학기 정도 지난 후 제가 휴학을 하게 되고 또 군복무를 하느라 더 이상 뵙지 못하다가 독일 유학을 끝내고 제가 귀국하여 국내에서 음악활동을 재개하면서 절친한 선후배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순교_ 제가 선화예고 교사 생활과 동시에 작곡발표회도 꾸준히 이어가며 활동하던 때에「우주」라는 작품을 쓰면서 무조음악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장 선생님께 직접 찾아가 가르침을 주십사 부탁을 드렸고, 감사하게도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제자가 될 수 있었지요.
김규동_ 저는 대학원 시절 제자로서 장 선생님과 사제의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요. 단정한 차림새에 워낙 말씀이 없으셔서 대화를 나눈 시간보다는 침묵으로 서로 통했던 것이 더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장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는 못하였지만, 대신 선생님께서 앉아 계시면 제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지금까지도 사제 간의 따스한 침묵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태희_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지도교수님으로 장정익 선생님을 처음 뵙게 되었는데, 말씀이 크게 없으시다보니 선생님의 의중을 헤아리기 어려운 마음에 그분의 앞에 설 때면 작아지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시지는 않았지만 제가 준비해 간 음악에 대한 적절한 제시와 아이디어로 따뜻하게 한두 마디 던지셨던 말씀 속에 함축적인 많은 의미가 들어있어 그것이 훗날 제게 큰 도움이 되었었습니다.
이용일_ 장정익 선생님을 지도자보다는 안내자로서 후학들에게 방향제시를 해주었던 분으로 많은 분들이 기억해 주시는 것 같네요.
장정익 선생의 음악세계
이용일_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장정익 선생님의 음악세계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기억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정태봉 선생님부터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정태봉_ 장정익 선생님의 종교는 가톨릭이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불교적인 세계에 심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점은 그의 작품에도 많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장 선생님의 성격적인 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상당히 여리고 섬세한 감성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건드리면 부러질 듯한 그런 위태로울 정도의 감성이라고까지 할 수 있겠습니다. 그의 작품에서도 이러한 면모를 읽을 수 있지요.
그는 후배들과 제자들에게 작품의 논리성을 상당히 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감성과 논리성이란 서로 상충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곡을 허투루 쓰는 자세를 몹시 싫어했던 만큼 동료들이나 제자들에게 경계의 뜻으로 한 말이라 이해합니다.
논리성을 강조하였지만(웃음) 제가 느끼기에 그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감성’입니다.
김규동_ 네, 맞습니다. 정태봉 선생님께서 정확히 짚어주셨네요. 저도 학생 때 장 선생님 말씀에 혼돈스러웠던 적이 있었지요. 그 때는 작품을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장정익 선생님께서 레슨 때면 머리로 이해하라고 항상 강조하셨습니다. 이것이 결국 음악을 대하는 같은 방법, 즉 감성적인 부분과 논리적인 부분을 굳이 분리해서 볼 필요가 없었는데, 학생 때는 그 뜻을 몰라 혼란스러웠었지요.
이순교_ 절제한다는 것 자체가 논리 아닐까요.
이용일_ 그렇다면 시인이신 조윤호 선생님께서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보시자면요?
조윤호_ 네. 장 선생은 본인의 입으로 분석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하였지만 가까운 친구로서 느낀 바로는 결코 아니었지요(웃음).
개인적인 추억을 한 가지 풀어보자면 저와 장정익 선생은 함께 자주 여행을 떠나곤 했었는데, 언젠가 한 번은 둘이서 밤새 논쟁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 날 밤, 여러 작곡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지금 기억하기로는 펜데레츠키, 메시앙, 말러, 스트리아빈 등을 주제로 삼았던 것 같네요. 차츰 여러 작곡가에 대한 서로의 의견에 동의해 갈 때쯤, 유독 말러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아주 싫어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제가 말러의 가곡에 관심이 많거든요. 그런데 장 선생은 작곡가 말러를 지칭해 ‘음악에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라고 말하였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일화를 보더라도 장 선생은 작품 속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극도로 절제하고, 거르고 걸러서 표현했다고 보여집니다.
이용일_ 정태봉 선생님께서 시인이신 조윤호 선생님의 참석을 강력하게 추천하셔서 의아했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네요. 장정익 선생님에 대해 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규동_ 저도 장 선생님의 작품을 떠올리면 ‘절제’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생각이 납니다. 물론 처음에는 음의 흐름을 먼저 볼 수 있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제라는 단어를 실감할 수 있지요. 일전에 장 선생님을 지칭해 입담 좋은 이야기꾼은 아니라고 말씀드렸던 적이 있었을 만큼 선생님의 작품에는 화려하고 요란한 장치는 없지만, 그 음악을 듣다보면 절제되는 기법 속에 못다 한 깊은 이야기들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의미로 장 선생님을 ‘다락방’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네요.
이용일_ 절제 속에 많은 이야기들이 함축되어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데요.
김규동_ 제자로서 그 함축이 의미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선생님께 질문을 자주 드리곤 했었는데, 작곡가로서 살아오신 삶에 묻어있는 당신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쉽사리 털어놓지 않으셨습니다.
이용일_ 어쩌면 작품 속에 내재되어 있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정태봉_ 이용일 선생님 말씀처럼 실제로 그는 작품 속에 자신이 못다 한 이야기들을 거의 담아냈다고 보입니다. 그의 작품들은 대개 길이가 짧고 음과 리듬은 분산되어 있습니다. ‘행간을 읽으라’는 말이 있지요. 장정익 선생님의 작품을 접하려면 행간을 읽을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그의 작품을 연주하고자 하는 연주자라면 더더욱 그런 마음의 눈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작품 악보를 읽기는 쉽겠지만 제대로 된 연주를 하기란 결코 쉽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마음의 눈으로 악보를 보는 연주자라면 그 악보의 행간에서 작곡가 장정익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중요한 몇 개의 단어나 짧은 문장으로 이야기하는 언어습관을 가졌던 사람이었고 또 그러한 점이 작품에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작곡가 장정익의 작품에 접근한다면 그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했는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용일_ 절제와 함축을 많이 한 분이지요. 그것들을 풀어내지 못한다면 장 선생님의 음악세계를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순교_ 저는 장정익 선생님의 작품은 깔끔하고 명료하며, 마치 이슬과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언뜻 보면 그저 물방울에 지나지 않지만 그 속을 자세히 보면 또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의 풍경을 품고 있는 물방울 사진을 좋아합니다.
조윤호_ 몇 년 전 장정익 선생의 회갑 음악회 때 제가 『느티나무』라는 제목의 시를 헌정하였습니다. 이 때 내용 중 나이테, 즉 연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며, 선생의 고향인 여수를 떠올리면 곧 바다가 연상되기에 ‘파도소리가 나무 속에 무늬처럼 박혔다’라고 표현하였지요.
저는 장 선생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기보다는 자신의 세계 속에 내재해 있는 것을 작품으로 나타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를 『느티나무』라는 시를 통해 떠올려 인용해 보면, 나무를 켜본 사람이라면 나이테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겉으로 봐서는 나이테의 존재조차 모르지요. 그러한 의미에서 장정익 선생은 나무와 같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정태봉_ 그리고 작곡가 장정익의 못다 한 표현이 작품 속에 숨어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않고 이를 감상한다면 듣는 이들은 그 뜻을 잘 전달받지 못할 것입니다. 개인마다 대화법이 다르듯, 장 선생님과 대화를 하려면, 더불어 그분의 작품을 보려면 다른 작곡가들과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김태희_ 네, 맞습니다. 장정익 선생님께서 대화하시는 방법은 부수적인 설명을 덧붙인다거나 서양식의 기승전결에 대한 것이기보다는 적절한 단어로 선문답을 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대화의 흐름이 직관에 의해서 진행이 되는 것이 많았는데, 음악에서도 논리적이고 직관적인 것을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음악을 들을 때는 편안하게 들리겠지만 그것 자체도 선문답적인 형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태봉_ 작곡가 장정익의 작품세계를 세 단어로 요약해 본다면 함축, 비약, 상징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가 어떤 음 하나를 썼다면 그것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장 선생님의 평소 말하는 습관을 생각하면 A를 말하다가 B나 C로 비약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작품에도 그가 의도했든 아니 했든 그러한 면이 분명히 스며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함축, 비약, 상징이라는 말들은 장 선생님의 작품세계를 형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거기에 불교적인 색채감이 더해지면서 그의 작품세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졌다고 보는 것이지요.
이용일_ 오래 전, 장 선생님이 고등학생이었을 때 제가 설명해 준 것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배음이 생긴 과정에 대한 것인데, 이를 매우 깊이 받아들이더라고요. 그 때 아마 음의 배음이 작곡의 매력을 느끼게 해서 결국 작곡가로서 평생 살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리_이은정 기자 / 사진_김문기 부장
-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3년 12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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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봉(서울대 음대 교수, 미래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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