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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김효근 / 2014년 10월

언제나 푸른바다~ 2018. 1. 24.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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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김효근(음악춘추 2014년 10월호)
아트팝(ARTPOP)으로 가곡의 대중화를 이끌어 낼 열정의 음악가


온 국민을 충격에 빠지게 했던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4개월을 지나고 있다. 사람들은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하고 후원금을 모으기 위한 운동을 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유족들을 위로하고 애도한다. 이런 자리에서 음악은 항상 큰 역할을 해준다. 지난 7월 24일 열렸던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콘서트의 마지막 곡을 장식했던 "내 영혼 바람 되어"는 이 사건을 계기로 유명해진 작품이다. 가사가 담고 있는 의미와 슬픈 멜로디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작곡가 김효근이 따뜻한 감성과 음악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작곡한 이 곡은 그의 첫 번째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작곡가 김효근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경영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미국 피츠버그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캐나다 알버타 대학교 경영대학에서 조교수로 근무한 후 귀국하여 92년부터 현재까지 이화여대 경영학과를 책임지고 있는 교수이다. 프로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의 본업은 음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음악에 애정을 쏟으며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곡가이다. 2010년부터 총 3장의 앨범을 발표한 그는 경영학자의 입장에서 음악계를 꿰뚫어 볼 줄 아는 예리한 시각까지 갖춰 어쩌면 우리가 미처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꼼꼼하게 알아채는 능력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연구실을 찾아 인터뷰하는 내내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김효근의 얼굴은 마치 갓 꽃피우고 있는 스무 살의 학생들처럼 행복하고 설렘 가득한 표정이었다. 


음악활동의 시작
김효근의 음악생활은 중학교 1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악 선생님의 추천을 통해 남성소년합창단의 반주자로 발탁된 것이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때에도 합창단 반주자로 활동했었고, 같은 시기에 교회에서도 성가대 반주자였다. 합창단 반주자로서 지속적으로 음악을 접하다보니 자연스레 가곡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 그는 김동진, 홍난파 같은 작곡가들이 작곡한 가곡의 서정적인 선율들을 매우 좋아했다고 전했다. 또한 선생님이 안 계실 때엔 학생들을 대신 가르치는 것을 즐겼고, 반주를 하면서 노래의 흐름과 서정적인 멜로디들을 접하는 것에 행복을 느꼈다. “사막에서 물 한 모금이라도 찾는 심정으로 음악을 찾아다니는 청소년기였어요. 중학교 땐 선생님께서 직접 연주회도 데려다 주시면서 그 현장에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음대로 진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다시 생각해보아도 그 때 저의 열정은 정말 남달랐던 것 같아요.” 그는 대학에 진학에서도 서울대 에코즈락밴드의 리더로 활동하며 밴드 악기들을 접했고, 한쪽에서는 팝 피아니스트로서 연주도 종종 해왔다. 작곡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곡들을 반주하고 악기를 연주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기초적인 이론적 지식과 자신이 직접 터득하며 배운 패턴들로 공부했다.


그러던 중 오랫동안 국민대 성악과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신 메조소프라노 조미경과 함께 1981년 <제 1회 대학가곡제>에서 선보였던 작품 “눈”이 대상을 거머쥐며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요즘으로 따지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1등을 한 셈이니, 당시에는 팬레터까지 받으면서 약 2년 가까이 여러 방송매체들에 출연했습니다. 굉장히 얼떨떨한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노래를 만들어 들려주었더니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해주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보람과 자신감을 느꼈습니다.” 아마도 이때의 기억이 현재까지 그가 활발하게 음악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 준 밑거름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이화여대에서 교수로 재직하게 된 이후에는 가장으로서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문제 때문에 음악을 향한 문을 억지로 닫는다. 경영학 활동을 시작하고 거의 15년 간 음악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연주회도 가지 않고, 성가대 지휘자도 그만 두고, 새로 나온 음반은 듣지도 않았다.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통제했다. 그러다 2007년 후반, 가곡 작곡가 선생님의 권유로 한두 곡씩이라도 함께 발표를 하자는 제안을 통해 다시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기쁜 마음으로 음악활동을 이어가면서 그는 점차 음악계와 관련된 문제점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음악계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
경영학적인 측면에서 그는 생산자인 작곡가와 연주자들이 소비자인 고객들과 멀어지고 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의견을 내비치며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우선 현대음악어법으로 작곡된 한국현대가곡이 연주하거나 듣기에 너무 난해하다는 점이다. 청중 대부분이 대중음악을 기반으로 한 음악적 해석 능력을 갖고 있는데, 가곡은 지나치게 어렵고 난해하게만 쓰여 더 이상 듣고 싶지 않게 만든다고 했다. 대중음악 시장은 현란한 사운드와 녹음 방식으로 귀를 자극하는 반면, 서정가곡은 피아노 혹은 덜 세련된 오케스트라 편곡 반주에 의지하다보니 나타난 현상이었다. 과거에는 피아노 반주를 통해 서정성 있는 멜로디 라인과 시인의 시가 결합된 방식으로 작곡했는데, 현대로 넘어오면서 대중들의 음악적 선호를 잘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곧 소비자인 청중들의 외면으로 이어져 50대 후반의 세대들이 옛 추억을 떠올리며 듣는 노래로 받아들여질 뿐, 그 이하 세대들에겐 촌스럽고 어색하게 들릴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원인 진단을 바탕으로 아트팝(ARTPOP)이라는 음악적 대안을 만들었다. “Art”의 예술성과 “Pop”의 대중성이 결합된 음악장르로 정의되는 아트팝은 기존에 가곡이 갖고 있는 예술성과 대중음악이 약하다고 비판받고 있는 가사와 연주 방식을 잘 조화시키려는 취지에서 탄생했다. 아트팝 곡을 작곡하고 시도 직접 쓰고 편곡도 해서 음반을 냈던 것이 바로 그의 1집 앨범 <내 영혼 바람되어>이다. 그는 아트팝에 대중음악 발라드나 CCM같은 분위기를 함께 느낄 수 있어 청중들로 하여금 “이런 것이 가곡이라면 한 번 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예상이 맞아 떨어져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며 연주회도 다수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작곡가 김효근의 음악활동
김효근은 평소에도 틈틈이 시와 곡을 쓰며 정기적으로 음반도 내고 연주회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인들이 쓴 시를 기반으로 멜로디를 붙이기도 했었지만, 자신의 생각과 꼭 맞는 시를 찾기가 어려워 직접 하기 시작했다는 그는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아내를 향한 사랑으로 영감을 받아 곡을 써왔다. 가난했던 학창시절 아내를 위해 자필 악보집을 선물하며 프로포즈를 했었는데 이후 25년만에 정식앨범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약 30년 간 악보집에 담겨져 아내와 둘이서만 들었던 곡들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도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신기하다고 했다.
그의 작품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관심을 표하고 있다. 2013년 2월 프랑스 파리에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열렸던 연주회에 초청을 받아 바리톤 송기창과 함께 그 곳을 방문했다. “프로그램 노트에 쓰여 있는 곡에 대한 간략한 설명만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가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공유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연주회가 끝나고 나서는 한국에도 이처럼 아름다운 노래들이 있다는 사실에 다들 감탄했고 곡들이 진심으로 마음에 와 닿는다고 많은 분들이 얘기해주셨어요. 저는 그 자리에서 클래식 한류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는 한국의 가곡을 서양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공감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기에 앞으로도 다양한 연주회를 기획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재정적인 여건이나 문화지원이 더 이루어지고, 자생적으로 티켓파워가 생긴다면 한국 가곡을 세계에 소개하는 콘서트를 해보고 싶습니다. 대표적인 한국 가곡들을 세계 수준의 오케스트라와 뮤지션들이 함께 한다면 분명히 반응이 올 거라 확신합니다." 그는 한국 가곡을 새롭게 편곡하고 뛰어난 기량을 갖춘 연주자들과 함께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하고 싶은 오케스트라가 있다면 언제든 연락을 기다리고 있겠다며 덧붙였다.


김효근이 꿈꾸는 앞으로의 미래
“너무 많아서 어떤 것부터 먼저 말해야 할지 잘 가늠이 안 되네요. 우선 제가 작곡해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노래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여파로 '클래식 음악'이라고 장르화되어 있는 음악의 경계가 배타적이지 않고 여러 의미로 다가갈 수 있는 열린 음악으로 변화했으면 좋겠습니다.” 작곡가 김효근은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에서 닫힌 의미의 클래식, 대중음악을 폄하하는 클래식이 아닌 대중음악의 장점과 결합된, 그러면서도 클래식이 가진 고유한 장점을 더 쉽게 대중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음악세계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한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음악과 관련된 철학적 정의가 새롭게 필요한 시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오늘날의 음악은 거의 대부분이 전기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그렇다면 과거에 우리가 음악을 정의했을 때와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 그의 의견이다. 음악을 하는 행위와 녹음하여 재생되는 행위들이 음악활동의 근간이 되어버린 시대에서 조금 더 세부적으로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그의 연구실 한쪽에는 피아노가 자리하고 있다. 그가 유학을 가자마자 전 재산을 들여 구입한 피아노이다. 30년 가까이 된 그 피아노는 작곡가 김효근의 모든 감정과 추억, 역사를 담고 있는 보물이다. 항상 옆에서 응원해주고 있는 아내와 함께 훗날 모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명곡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고 가곡의 대중화를 이끌겠다는 그의 꿈을 꼭 이루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글_김주형 기자.  사진_김문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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